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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의 조건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
 
편집국   기사입력  2015/04/13 [14:23]
▲ 김형태 총장(한남대학교)     ©편집국
 내가 존경하는 친구이자 중견 법조인인 조근호 변호사(전 법무연수원장)는 법률전공자이면서도 인문학적 관심과 소양이 특출하신 분이다. 대전지검장으로 계실 때도 점심 식사 후 혼자 한남대 박물관을 찾을 정도요, 검찰청에서는 일과 후 요가강습을 하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방문하여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나눈다. 대학교 총장을 하면 아주 적합할 분이다. 그가 최근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전해준 편지를 여기 요약 소개한다.
 
 피렌체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덕이다. 코시모 데 메디치(1389~1464)는 천재적인 경영능력과 정치 수완을 갖춘 자이지만, 그의 신조는 ‘겸손’이었다. 말 대신 당나귀를 타고 다녔고, 피렌체 시내를 다닐 때도 항상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손히 절을 하였다.
 
 그는 대중의 질투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집도 귀족들의 주거 지역을 피해 시장 바로 옆에 지었다. 대중들과 가까이 지내려는 배려 때문이었다. 집 건축도 호화롭지 않게 하여 대중들과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했다. 우리들은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코시모 데 메디치가 ‘겸손’을 평생의 신조로 삼고 대중의 질투심을 고려해 당나귀를 타고 다녔다는 사실에서 배울 점이 많다. 보통 사람들에겐 좀 더 큰 차, 좀 더 좋은 아파트를 선호하며 자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또 한 사람이 코시모의 손자인 로렌조 데 메디치이다. 로렌조 데 메디치가 어느 날 공원을 지나가다가 조각을 하는 한 어린이를 발견했다. 그가 노인의 모습을 조각하고 있는데, 치아가 너무 가지런하였다. 이를 보고 로렌조가 “치아가 너무 젊은 것 같다. 다시 만드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더니 다음날 그 소년은 기가 막힌 작품을 새로 만들어 갖고 왔다. 로렌조는 그의 아버지를 불러 그를 양자로 삼겠다고 청했다. 그가 바로 미켈란젤로였고 그는 로렌조의 양자가 되어 당대 최고의 인문학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가 인류를 위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을 발굴하여 교육을 시킨 로렌조 데 메디치의 덕분인 것이다. 예술가의 가능성을 발견하여 양자로 삼고, 그에게 미술교육이 아닌 최고의 인문학 교육을 시켰다는 것은 정말 존경할 일이다. 미켈란젤로는 플라톤 철학을 공부했고, 자신의 조각·그림·건축에 이를 반영했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는 몰락하는 가문의 재산을 정리하는 상황에 처했다. 메디치 가문의 모든 재산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 로레인 왕가에 넘기게 된 것이다. 그녀는 두 가지 협상 조건을 제시했다.
 
 ①메디치의 모든 예술품은 국가의 소유이며, 어떤 경우라도 피렌체를 떠날 수 없다. ②이 예술품들은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우피치 미술관이 만들어졌고, 메디치가의 미술품들이 유럽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 후 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의 상징이 되었고 그 안에는 보디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같은 명작이 소장돼 있다. 루이자의 역사적 결정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피렌체의 유명세는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 때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구매 보존한 간송 전형필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다. 현재에도 이렇게 문화와 문화재를 아껴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고려 시대 무신 집안들도 있었고 조선 시대 권문세가들도 많았는데,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처럼 문화예술인을 지원하고 문화예술품을 수집 보관 전수해준 명문가는 거의 없었다. 혹시 삼성가의 리움박물관이 이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가문’이라는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 대신 ‘문중’(門中)이란 말은 더러 있는 것 같다. 요즘 재벌들을 일컬어 ‘삼성가’, ‘현대가’, ‘LG가’로 일컫지만, 메디치 가문의 예를 볼 때 돈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라 철학과 역사학 등의 인문학적 전통과 정신적 기초가 있어야 제맛이 나는 용어이다.
 
 유럽에서는 명문가가 되려면 십자군 전쟁 당시 기사단에 참가하여 전사한 가족이 최소 한 사람은 있어야 가능했다. 한 가문이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위해 어떤 희생봉사를 하였는가에 따라 그에 대한 예우가 달라졌던 것이다. 재산이 많거나 정치가를 배출하여 명문가가 되는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하는 유럽의 전통은 오늘날도 국왕이나 수상의 자손들이 앞다투어 군대에 가고 전쟁 중엔 최전선에 앞장서고, 재산이 있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여 먼저 베풀고 나누는 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앨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홍콩의 리카싱(李嘉誠)등 세계적인 부자들이 재산의 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고 지구촌 전체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일을 좋은 본보기로 삼아야 할 일이다. 목사님들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施比受 更有福 / 행 20:35)는 설교는 많이 하지만, 직접 선물을 보내거나 받은 선물과 호의에 대해 감사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역시 언행일치나 신행일치란 매우 어려운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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